말통묵상 232 - 히브리어로 이해하는 성경(9-3,9-4)

2021.04.28

 

히브리어로 이해하는 성경 (9-3)


레위기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제사와 관련된 또 하나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6장 6절 이후에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다시 말하면 제사장이었던 아론이 속죄제를 드리면서 두 염소를 뽑아 하나는 여호와를 위하여 다른 하나는 아사셀을 위하여 드렸습니다. 여기서 아사셀이 과연 무엇이냐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사셀은 ‘내보내는 염소’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염소를 보낸다는 말은 ‘내보내는 염소’를 위하여 광야로 염소를 보낸다는 말이 되는데 이 말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아사셀이 곧 내보내는 염소라고 한다면 그 염소를 위하여 다른 염소를 제비를 뽑아 드렸다는 것은 본문에 충돌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사셀은 내보내는 염소가 아니라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사셀의 히브리어는 ‘아자젤’인데 ‘아즈’와 ‘아잘’의 합성어입니다. 아즈는 ‘강제로’ 혹은 ‘격렬하게’라는 뜻이고 아잘은 ‘멀리 보내다’ 혹은 ‘떠나보내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아사셀은 ‘강제로 멀리 떠나보낸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아세셀을 위하여 광야로 염소를 보냈다는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멀리 떠나보내기 위한 목적을 위해 염소 한 마리를 광야로 끌고 가서 멀리 내보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9-4
다음으로 신명기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6장 4-5절에 유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죠. 여기서 ‘이스라엘아 들으라’에서 들으라의 히브리어가 바로 쉐마입니다. ‘쉐마 기도문’이라고 잘 알려져 있는 본문입니다.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쉐마’! ‘들으라’는 의미의 이 히브리어를 말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을 보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사실 히브리어 원어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여호와 엘로헤이누 여호와 에하드’이며 그것을 직역하면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하나입니다’이죠. 우리말 성경과 히브리어 원문의 직역에서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 ‘오직 유일한 여호와’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은 ‘여호와는 하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개역한글은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로 번역되어 있고 새번역 성경에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라고 번역되어 있지요. 사실 유일하다와 하나이다의 차이점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우리말에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어에는 차이가 있지요. ‘유일하다’의 히브리어는 ‘야히드’이며 ‘하나다’의 히브리어는 ‘에하드’입니다. 히브리어의 표 조금 차이가 있을 뿐 듣기에는 거의 비슷하지요. 의미상에서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야히드는 다양한 것들 중에 오직 그 것이란 의미가 있고, 에하드는 원래 본질적으로 하나를 의미합니다.

쉐마 기도문으로 알려진 본문은 우리 기독교인들보다 유대인들에게 너무 중요한 성경말씀입니다. 유대인의 어떤 건축물에도 들어가는 문의 오른편에는 ‘메주자’라고 하는 기도함이 달려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들어가거나 나올 때마다 항상 그 기도함에 손을 대고 그리고 자신들의 입술에다 대면서 기도합니다. 그 메주자 즉 기도함 안에 있는 기도문이 바로 쉐마 기도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쉐마 기도문의 ‘여호와는 한 분이시다’ 혹은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다’로 번역된 ‘여호와 에하드’를 위한 해석이 필요합니다. 먼저 여호와 에하드를 여호와는 한 분이시다라고 번역한 것은 여호와의 단일성를 강조하는 번역입니다. 당시 여호와 신앙이 다양하게 변형되고 무분별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탓에 여호와의 단일성을 강조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살았던 도시들을 찾아 발굴하다보면 시대에 따라 다양한 토기들이 발견됩니다. 그런데 몇몇 도시에서 발견되는 토기마다 ‘사마리아의 여호와’ ‘데만의 여호와’라는 이름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여호와의 이름이 가나안 땅의 신과 결합시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종교 다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이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계시다는 식의 이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번역인 ‘오직 유일한 여호와뿐이시다’는 여호와의 유일성을 강조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고자 했습니다. 가나안 정복과 정착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보다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례가 종종 성경에서 발견됩니다. 그렇다면 쉐마 기도문은 십계명의 1계명인 ‘너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지니라’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는 선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