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통묵상 143 [예언자들의 언어]

2021.01.01

Offering Right Worship, S.C.O.P.E. Lesson #1: Isaiah 1:10-20, September 6,  2020 | Sunday School Central

 

문서를 남긴 예언자들

개신교의 구약성경은 예언자가 기록한 혹은 예언자에 관해 기록된 책을 ‘예언서’라고 부르고 있으며, 학자들은 이것을 ‘문서 예언자들의 예언서’로 분류합니다. 여기서 가리키는 ‘문서 예언자들’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혹은 자신에 대해 후대에 기록된 이야기를 가진 예언자들을 가리킵니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열 두 소예언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지금까지 묵상하고 살폈던 예언자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기록된 문서가 없었기 때문에 ‘문서 이전의 예언자들’의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무엘, 나단, 미가야, 엘리야, 엘리사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제 우리는 문서 예언자들의 예언활동과 예언담화들을 묵상합니다. 먼저 문서 예언자들이 처음 등장한 BC 8세기 예언자들, 즉 이사야-아모스-호세아를 만나려고 합니다.

그들은 문필가이며 설교자였습니다
문서 이전의 예언자들은 ‘나비’라는 이름와 함께 ‘로에’(‎רֹאֶה, 삼상 9:9), ‘호제’(‎חֹזֵה, 삼하 24:11, 왕하 17:13, 대상 21:9, 대하 9:29), ‘하나님의 사람’(אִישׁ־הָאֱלֹהִים, 신 33:1, 삼상 9:6-10, 왕상 12:22, 왕상 17:18-24, 왕하 4:7, 9, 16, 22, 25, 27)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문서 이전의 예언자들은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다양한 예언 활동을 수행했던 사람들이었던 반면에 문서 예언자들은 주로 ‘나비’(‎נָּבִיא)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가진 문서를 기록하거나 후대의 기록자들이 이들의 예언 활동을 남기면서 알려진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문서 예언자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예언 기록을 남긴 저자인 동시에 여호와의 메시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는 중재자이며 설교자들이었습니다.

비록 문서 예언자들이 자신들의 이름으로 예언 활동을 기록했더라도 예언자들의 역할은 저술보다는 말로 여호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활동이었습니다. 학자들은 예언자들의 말을 예언 담화라고 부르며 담화의 상대자들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왕들과 백성들이었습니다. 왕들과 백성들에게 전하는 예언은 신탁, 심판, 구원선언, 훈계, 제의(찬송, 기도, 탄원, 축복) 등 다양한 담화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BC 8세기 문서 예언의 상황
엘리야와 엘리사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BC 9세기 예언자로 대표되는 예언자들이었습니다. 두 예언자는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와 예후 왕조 시대에 활동했습니다. 아합의 아버지였던 오므리는 본래 장수 출신으로서 반란으로 왕권을 찬탈한 후 4대(오므리-아합-아하시야-요람)에 걸쳐 북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자신의 가문을 왕족으로 만들고 남유다의 통치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언자들의 비판 대상이었던 신명기 언약위반, 바알 우상숭배, 정치적 타락, 왕권 남용을 저질렀으며 이에 대항하여 영적 싸움을 벌였던 엘리야와 엘리사는 오므리 왕조의 몰락과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해야만 했습니다.

BC 9세기에 활동했던 엘리야와 엘리사는 문서 이전 예언자들로서 8세기 예언자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BC 8세기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과 솔로몬 이래 ‘황금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정치, 외교,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급진적인 변화들이 일어났던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급진적인 변화는 불법적인 우상숭배와 빈부격차에 따른 불평등, 즉 상류층에만 부가 집중되고 하층민이 가난과 억압에 시달리는 사회적 불의를 가속화했습니다. 결국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중재자적 역할을 했던 예언자들이 여호와의 부르심에 따라 이스라엘 역사에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BC 8세기 문서 예언자들의 외침
하나님은 출애굽의 은총 가운데 약속의 땅을 소유한 백성과 나라가 왕들의 우상숭배와 왕권 남용으로 여호와의 가르침을 버리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약속의 땅이 무너지고 여호와의 소유이며 거룩한 백성들이 다른 신들을 따르는 상황에서 예언자들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심판과 멸망, 이방에 대한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를 촉구했으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활동했던 예언자들을 ‘불만 지성인’(discontent intellectuals)으로 평가하는데 이것은 당시의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과 저항의식이 누구보다도 강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BC 8세기 문서 예언자들은 여호와의 부르심 이전에 목축업과 농업에서 활발한 경제활동을 했거나 이스라엘 왕조의 궁중에서 일하는 정치적 사회적 위치를 가진 지성인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적 타락과 사회적 부조리를 깨닫고 있었던 그들은 여호와의 부르심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하는 여호와의 부르심에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8절)하고 자원했습니다. 아모스는 뽕나무와 양을 치다가 부름을 받았고(암 7:14), 호세아는 처음부터 음란한 여자 고멜과 결혼하라는 명령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사 6:1-13). 이처럼 BC 9t세기 엘리야-엘리사의 예언활동처럼,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로 대변되는 BC 8세기 문서 예언자들은 선악과 정의와 불의에 저항하는 여호와의 신탁을 갖고 여호와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