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통묵상 144 [예언자들의 언어 – 이사야]

2021.01.02

Isaiah - Prophet, Timeline & Message - Biography

 

예루살렘의 위기와 지도자들의 부패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사 1:2)

예언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이 이사야서입니다. BC 8세기 예언자들로 알려진 아모스, 이사야, 호세아 중 남유다에서 사역했던 예언자는 이사야가 유일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남유다의 다윗전승에 따른 예언서들 가운데 이사야서가 다른 예언서들의 처음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예샤야후 벤-아모쯔, ‎יְשַׁעְיָהוּ בֶן־אָמוֹץ)는 남유다의 왕들, 즉 웃시야(BC 791-739년), 요담(BC 750-735년), 아하스(BC 731-715년), 히스기야(BC 715-686년) 시대에 활동했으며 그의 예언활동은 궁중에서 왕들에게 집중되었습니다(사 1:1). 그는 왕권을 옹호하는 역할이 아니라 언약 위반, 종교적 우상숭배, 정치적 타락, 왕권 남용에 맞서서 여호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그는 다윗 왕조, 즉 시온 언약 전승을 계승했는데 이것은 예루살렘 혹은 시온과 다윗 왕조를 모든 세상 피조물의 창조자이신 여호와의 영원한 대리자로 선택했던 전승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다윗의 예루살렘, 즉 시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 무너져갔습니다. 백성의 무지와 지도자들의 타락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무너뜨렸으며 결국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가르침을 거역했습니다. 이사야 1장부터 예언자 이사야는 ‘여호와를 거역하는 것’이 곧 심판이며 멸망이라는 계시의 언어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1절)
예언자를 가리켜 ‘호제’(‎חֹזֵה)라고 일컫기도 합니다(삼하 24:11). 히브리어 ‘호제’는 ‘계시하다’ 혹은 ‘환상을 보다’의 뜻을 가진 완료동사 ‘하자’(‎חָזָה)를 수행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처럼 ‘예언하는 자’의 ‘나비’(‎נָבִיא)와 ‘계시하는 자’ 혹은 ‘환상을 보는 자’의 ‘호제’는 예언자들의 중심적 역할들이었습니다. 문서 이전의 예언자들 가운데 나단에 이어 다윗을 위해 일했던 갓은 ‘나비’와 ‘호제’의 두 이름을 가진 예언자였습니다.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삼하 24:11)에서 ‘선견자’의 히브리어 ‘호제’(‎חֹזֵה)와 선지자의 ‘나비’(נָבִיא)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문서 이후 예언서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사야서는 이사야의 소명 이야기(Calling Narrative)가 아니라 ‘계시’(하존, ‎חֲזוֹן)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사야서 뿐만 아니라 나훔서(나 1:1), 오바댜서(옵 1), 하박국서(합 2:2), 에스겔(겔 7:13)의 예언활동을 ‘하존’이나 ‘하줏’(‎חָזוּת)으로 이해했습니다. 이처럼 이사야를 비롯하여 문서 이후 예언자들은 왕이나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드바르 엘로힘, ‎דְּבַר־אֱלֹהִים)을 전하는 중재자적 역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하존, ‎חֲזוֹן)를 선포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했습니다.

백성의 무지(2-4절)
예언자들의 계시는 주로 ‘심판 예언 선언’(prophetic judgement speech)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를 대신하여 개인과 집단, 그리고 국가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는 예언자들은 심판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사야의 계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거역하였고’(사 1:2),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였으며(사 1:3),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4)에서 심판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언자 이사야는 ‘알지 못하고’(‎לֹא יָדַע), ‘깨닫지 못했다’(‎לֹא הִתְבּוֹנָן), 즉 ‘백성의 무지’를 강조했습니다. ‘알다’(יָדַע)와 ‘깨닫다’(הִתְבּוֹנָן)의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약속과 계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언어들이었습니다. 이 관계의 단절은 ‘여호와를 거역하고’(파쉬우, ‎פָּשְׁעוּ), ‘여호와를 버리며’(‎עָזְבוּ אֶת־יְהוָה), ‘여호와를 만홀히 여기며’(‎עָזְבוּ אֶת־יְהוָה), ‘여호와를 멀리하고 물러나다’(‎נָזֹרוּ אָחֽוֹר)의 결과로 이어졌습니다(사 1:2-4). 이처럼 이사야는 ‘백성의 무지’가 그 원인이 되었으며 그 결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선포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위기(5-9절)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사야가 예언자로서 활동한 것은 웃시야 왕 때부터(사 1:1, 6:1) 산헤립이 유대를 침입한 히스기야 왕 14년까지(사 36:1)입니다. BC 743년부터 701년까지 약 40년간의 예언 활동이었습니다. BC 738년 즈음 앗수르 제국의 디글랏빌레셀은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다메섹을 점령하고 봉신국으로 삼았습니다. 그때 아람의 르신(BC 737-732년, 왕하 15:27-31)과 북이스라엘의 베가(BC 738-737년, 왕하 15:23-26)를 중심으로 반앗수르 연합이 형성되었으며 이 연합군은 남유다를 연합군에 포함시키려고 했습니다. 앗수르의 봉신국이 아니었던 남유다의 아하스 왕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르신과 베가는 남유다를 침공했으며 남유다의 아하스는 이사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사 7:1-7) 앗수르 제국에게 도움을 청하고 조공까지 바쳤습니다(왕하 16:7). 이처럼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위협과 침공을 이유로 앗수르 제국의 봉신국이 된 남유다는 점점 황폐해갔으며 결국 여호와 신앙마저 저버리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나는 일은 여호와 하나님이 남유다를 심판하실 결과를 초래하며 그 심판의 도구로 앗수르를 부르시며 그들의 침략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지도자들의 부패(10, 23절)
남유다의 웃시야 왕은 영토확장과 활발한 경제활동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대하 26:6-15). 그를 가리켜 ‘농사를 좋아했다’(대하 26:10)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본래의 히브리어 문장은 ‘땅을 사랑했다’(כִּי־אֹהֵב אֲדָמָה הָיָה)이며 이 표현은 부의 축적에 대한 비판적 히브리 표현으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웃시야 시대의 농민들은 왕권 남용에 따른 세금 부과 및 노동착취로 고통을 받았으며 채무 불이행에 따라 재산을 빼앗기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이사야는 왕권을 남용하여 농민들을 착취하는 고위층들을 가리켜 ‘소돔의 관원들’(사 1:10)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관원들’(10절)과 ‘고관들’(23절)은 왕권에 기대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부패에 대한 이사야의 비난은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사 1:23)에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지도자들의 패역과 부패에 대한 이사야의 심판 언어는 이사야서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공의와 정의(27절)
예언자 이사야는 하나님이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공의’의 ‘쩨다카’(‎צְדָקָֽה)와 ‘정의’의 ‘미쉬파트’(‎מִשְׁפָּט)라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습니다(사 1:27). 공의와 정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이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실천적 삶의 원리입니다. 만일 그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로 민족 전체의 신앙적 결속을 공고히 해야 할 책임을 진 지도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며 민족 공동체는 스스로 붕괴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를 비롯하여 BC 8세기 예언자들은 시내산 계약에 근거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남유다의 계약 관계를 강조했으며 계약 파기에 따른 심판의 예언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과 약속의 백성 사이의 관계 훼손은 곧 주변의 강대국 침공으로 이어지며 결국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구약성경의 역사라는 사실이 예언자들의 계시에서 확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