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통묵상 184 [예언자들의 언어 - 예레미야]
2021.01.29

예언자로의 부르심
렘 1:4-10
아나돗 제사장 출신의 예레미야는 여느 예언자들처럼 여호와의 부르심(calling)을 들었다(렘 1:4). 하지만 예레미야는 그 부르심에 마냥 따를 수 없었다. 유다가 처한 상황이 엄중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제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예루살렘 성전제사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아나돗 출신의 예언적 선포가 장차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를 예레미야 자신은 알고 있었다. 즉 예레미야는 예언자로의 부르심이 다윗왕권을 계승하고 있는 유다의 죄악과 불법적 성전제사를 고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워했다. 그 부르심을 거절해야만 했다. 하지만 여호와의 부르심은 예레미야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5).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선 사람들이 스스로 정한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개입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다
여호와의 부르심은 즉흥적이거나 순간적인 일이 아니라 오래전에 결정된 일이었다.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부르신 하나님은 ‘모태에 짓기 전에’ 그리고 ‘배에서 나오기 전에’(렘 1:5)라고 표현하시며 예레미야의 소명이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셨다. ‘모태’의 히브리어 ‘바베텐’(בַבֶּטֶן)과 ‘배에서’의 히브리어 ‘메레헴’(מֵרֶחֶם)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사실을 알리는 인격적 표현에 해당한다.
이것은 이사야 예언자의 발언에도 나타난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사 49:15)에서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의 처절한 삶을 살아가던 유대인들을 위로했다. 여기서 ‘그 젖 먹는’의 히브리어 표현이 ‘메레헴’(מֵרֶחֶם)이며 ‘자기 태에서’의 히브리어 표현이 ‘바베텐’(בַבֶּטֶן)이다. 특별히 여성의 자궁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레헴’(רֶחֶם)은 위로와 긍휼의 언어로 시편에서도 종종 사용되었다(시 116:5).
2)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
예레미야의 소명이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5절의 ‘알다’(예다티카 יְדַעְתִּיךָ), ‘성별하다’(히크다쉬티카 הִקְדַּשְׁתִּיךָ), ‘세우다’(네타티카 נְתַתִּיךָ)에서 확인된다.
- ‘알다’의 히브리어 ‘야다’(יָדַע)는 단순히 지적인 앎의 차원이 아니라 주인과 종의 관계(삼하 7:20)나 남녀가 결혼하여 한 몸이 되었을 때(창 4:1) 사용되었다.
- ‘알다’에 이어 등장하는 ‘성별하다’의 히브리어 ‘히크디쉬’(הִקְדִּישׁ)는 하나님이 그를 거룩하게 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역시 ‘알다’와 함께 예레미야의 소명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성별하셨다’는 것은 그를 정결하게 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위하여 그를 구별하여 따로 두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 마지막 단어 ‘세우다’의 히브리어 ‘나탄’(נָתַן)은 창조 기사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창 1:17),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처음 부르심을 들은 아브라함을 ‘세우실’ 때도 등장했다.
이처럼 ‘알다’ ‘성별하다’ ‘세우다’의 연속적인 동사 사용은 예레미야의 부르심에 하나님이 전적으로 개입하셨다는 사실을 알렸다. 무엇보다도 각 동사들에 첨부된 인칭대명사 어미들(1인칭 תִּי, 2인칭 ךָ)이 하나님과 예언자의 관계를 구체화했다: ‘내가 너를 알았다’(יְדַעְתִּיךָ), ‘내가 너를 성별했다’(הִקְדַּשְׁתִּיךָ), ‘내가 너를 세웠다’(נְתַתִּי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