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통묵상 175 [예언자들의 언어 - 이사야]

2021.01.15

Great Are the Words of Isaiah | HubPages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사 61:1

제1이사야(사 1-39장)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며 여호와의 부르심에 화답했다면, 바벨론 포로 시기에 활동했던 무명의 제2이사야(사 40-55장)는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사 40:6)라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적극적인 자세로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9절) 예언자가 되었다. 그리고 제3이사야(사 56-66장)로 알려진 시온의 예언자도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사 61:1)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랐다. 제1, 2이사야와 달리 제3이사야는 이사야 61장에서 “주 여호와의 영”(1절)이 자신에게 임했다는 고백, 그리고 자신에게 “기름을 부으사”(1절)라는 메시아적 표현을 첨부했다. 여기서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는 것은 예언자로서의 부르심이며,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다는 것은 그를 왕(삿 9:8, 16:3, 삼하 5:17, 왕하 9:3, 대상 29:22, 시 45:7, 89:20) 혹은 제사장(출 28:41, 레 7:36, 민 3:3)로서의 부르심을 가리킨다.


주 여호와의 영
이사야 61:1 ‘주 여호와의 영’(루아흐 아도나이 ‎רוּחַ אֲדֹנָי יְהוִה)에서 여호와의 이름이 독특하게 나타난다. ‘여호와’는 ‘요’(י), ‘헤’(ה), ‘바브’(ו), ‘헤’(ה) 등 네 개의 자음만을 가진 이름이다.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지 말라’는 계명에 따라 여호와의 자음 이름을 부르지 않고 ‘주’ 혹은 ‘나의 주’의 뜻을 가진 ‘아도나이’(אֲדֹנָי), 그리고 ‘그 이름’의 뜻을 가진 ‘하쉠’(‎הַשֵּׁם) 등 여호와를 상징하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비록 여호와의 이름이 아도나이 혹은 하쉠으로 일컫더라도 마소라 본문(Masoretic Text, MT)으로 알려진 구약성경 본문은 여호와의 이름을 모음을 가진 ‘‎יְהוָה’로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사야 61:1의 ‘여호와’ 이름은 ‘יְהוִה’으로 표기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호와의 히브리어 자음에 서로 다른 모음이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서 대부분의 여호와 이름은 ‘바브’(ו) 아래에 ‘아’(ָ) 모음을 가진 ‘‎יְהוָה’로 나타나지만, 이사야 61:1은 ‘이’(ִ) 모음을 가진 ‘יְהוִה’로 쓰여졌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יְהוִה’의 표기에 앞서 사용된 ‘אֲדֹנָי’의 마지막 모음 ‘아’(ָ)와 겹치기 때문이다.

이사야 61:1에서 ‘아도나이’(אֲדֹנָי)와 ‘여호와’(יְהוִה)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사용된 것은 특별한 목적을 가진 강조의 의미를 나타내는데 있다. 예언자가 강조하고 했던 것은 바로 ‘영’(루아흐 רוּחַ)이었다. ‘루아흐’는 ‘하나님의 영’(רוּחַ אֱלֹהִים) 혹은 ‘여호와의 영’(רוּחַ יְהוָה)에 나타나며 전치사 ‘알’(‎עַל)과 함께 사용되어 ‘주 여호와의 영이 나에게 임하다’ 곧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영이 임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특별한 일을 감당하도록 세우실 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민 11:17, 25, 26, 삿 3:10, 14:6, 삼상 11:6).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셨다
‘기름을 붓다’의 히브리어 ‘마샤흐’(‎מָשַׁח)는 특별한 직무를 행하도록 따로 구별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앞선 문장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에서 이미 밝혔지만 제3이사야는 ‘마샤흐’의 사용에서 자신의 소명 이야기를 보다 강조했다. 예언자의 소명과 관련하여 ‘여호와의 영의 임재’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심’의 동시적 사건은 매우 드문 광경이었다. 두 사건은 ‘야안’(‎יַעַן)의 접속사로 연결된다. 구약성경 전체에서 약 100회 정도 나타나는 ‘야안’은 주로 대화체의 문장에서 발화자(speaker)가 사건이 발생한 원인 혹은 이유를 청자(hearer)에게 설명해야 할 때 등장한다. 접속사 ‘야안’의 역할에 따라 이사야 61:1은 ‘주 여호와의 영이 예언자에게 지금 임하고 있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이었다’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여호와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여호와의 영이 언제나 임한다는 말씀이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예언자는 여호와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영이 임하는 특별한 경험한 탓에 너무 기뻤다. 그의 기쁨(rejoice)이 얼마나 컸는지는 히브리어 동사 ‘사스’(‎שָׂשׂ)에서 알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사스’의 처음 등장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련된 일이었다. 그것은 요단강 너머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광야 40년 여정의 마지막 설교를 했던 모세의 신명기 말씀이다. 그 설교에서 모세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을 행하시고 너희를 번성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시던 것 같이”(신 28:23), 그리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니라”(신 30:9)와 같이 여호와와의 기쁨을 표현하면서 ‘사스’를 언급했다.

모세의 설교를 자주 인용했던 제3이사야 역시 하나님의 기쁨을 ‘사스’로 표현했다.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사 65:18-19)에서 여호와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백성 때문에 당신의 기쁨(사 61:3, 사손/‎שָׂשׂוֹן)을 숨김없이 드러내셨을 때 그 기쁨의 언어가 바로 ‘사스’였다. 여호와의 기름부음과 임재를 체험한 예언자는 신명기의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을 귀환자들에게 선포했다. 여호와의 주권적 개입은 포로 귀환자들의 슬픔을 “기쁨의 기름”(쉐멘 사손 ‎שֶׁמֶן שָׂשׂוֹן)으로 변화시켰으며, 예언자는 여호와의 임재를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