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통묵상 280 - 성경 뒷 이야기(4)

2021.08.11

블레셋 이야기(4)

블레셋의 도시 - 아스돗, 아스글론
1)아스돗
아스돗은 지중해변가에 위치한 도시로 현재 이스라엘의 수도인 텔아비브에서 남쪽으로 35km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이다. 아스돗은 1962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의 프리드만 교수를 더불어 히브리대학교의 도단 교수 부부에 의해 발굴이 되었다. 아스돗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구석기 시대부터 유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별히 도단 부부는 아스돗의 발굴을 통해 블레셋의 독특한 토기의 발달을 목격할 수 있었고, 블레셋 사람들이 주전 13세기 말부터 12세기 초 지중해변가에 정착했음을 밝혀낸 바 있다.

이곳에서 블레셋 사람들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말은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한다. 적어도 성경 이야기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아스돗과 하나님의 궤(혹은 언약궤) 그리고 다곤신 등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5장은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빼앗가 갔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 하나님의 궤를 아스돗에 있던 다곤 신전에 두었고 다음 날 아침 다곤 신상은 엎드려져 있었다. 다음 날도 같은 사건의 반복되었다. 이후 도시에 찾아온 재앙으로 인해 하나님의 궤는 가드와 에그론으로 옮겨졌고 이 도시들 역시 재앙을 벗어 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아스돗에는 다곤 신상과 신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곤 신은 일찍이 앗수르와 바빌론 지역에서 주로 섬겨졌던 신으로 가나안 지역까지 전해진 신으로 보인다. 다곤은 주전 2,300년 경 기록된 에블라 문서에도 이미 등장하고 있는데 200명이 넘는 신들의 신이요 땅의 주인, 가나안의 주인, 수많은 도시들의 주인으로 묘사되었다. 에블라의 도시 성문들은 다간의 이름을 넣어 이름 지었고 주전 1300년 경의 우가릿문서는 바알 다음의 세 번째 신으로 거대한 신전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있다. 학자들은 다곤을 바알과 동일한 신으로 보거나 바알의 형제 급의 신으로 보고 있다. 바빌론 신화에서 다곤은 비록 그 신화가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상류층의 신들 중에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가릿어의 경우 다곤의 이름의 어근으로 보이는 dgn은 곡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히브리어에서 다간(דָּגָן)도 같은 의미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곤(דָּגוֹן)의 앞부분 다그(דָּג)는 히브리어로 물고기라는 뜻이기 때문에 물고기 모양의 신으로 추측하는 경우가 많다. 다곤의 의미가 곡식이든 물고기이든 다곤은 분명 풍요와 관련이 있는 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과 고대 근동 지역의 건조한 여름과 부족한 물이라는 자연 환경을 볼 때 풍요로움을 염원하는 이들의 종교적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블레셋 사람들은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면서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리라는 기대 아래 가나안의 신 다곤을 숭배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아스돗에서는 아직까지 신전이나 다곤 신상의 흔적이 발견된 바는 없다. 다만 학자들 가운데 앗수르의 니므롯에서 발견된 사르곤의 궁전 벽부조에서 발견되는 물고기 모양의 의복을 쓰고 성배하고 있는 사람과 다곤과 연관시키곤 한다.


2)아스글론
아스글론은 아스돗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53km 떨어져 있는 장소로 유적지의 경우 공원화되어 현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휴양지로서 유명하다. 팔레스타인의 점유지라는 조건 때문에 고고학적 발전이 그다지 없는 가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4개의 블레셋 도시들의 발굴 포커스는 언제나 블레셋 시대에 있다. 아스글론도 물론 예외는 아니며 하바드대학교의 발굴팀이 현재도 활발하게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역시 독특한 블레셋 토기가 발견되었고 후에는 가나안의 문화와 융화된 토기를 제작한 것이 목격되었다. 특별히 아스글론에서는 포도주 생산을 위한 틀이라든가 수많은 포도주 항아리들 그리고 “yn ‘dm 붉은 포도주”라는 의미가 씌어진 항아리 조각들을 통하여 포도주 생산이 상당히 활발했던 장소였음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생산품들의 거래를 위한 저울과 저울 추들이 발견되었는데 이 방을 회계용 사무실이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아스글론의 부유함은 우리에게 삼손이 30벌의 의복이 필요했을 때 왜 아스글론에 가서 구할 수 있었는지를 추측하게 한다(사사기 14장). 아스글론의 부유함은 비단 블레셋 시대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스글론의 이름은 주전 1350년 전후 이집트가 가나안 땅을 장악했던 세력이었음을 보여주는 텔 엘-아마르나 문서에도 성벽을 쌓은 도시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 아취형태로 진흙벽돌을 쌓아 만든 거대한 성문으로 요새화 된 도시가 기원전 1850년경부터 이곳에 있었음이 밝혀졌다. 1992년 발견된 이 성문은 길이 15m, 높이 4m, 두께 2m에 달해 마차가 충분히 출입할 수 있는 크기이다. 아스글론의 성문은 천장을 아취형태로 건축하는 방법 중 가장 최초의 예로서 그 솜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성문 밖은 40도의 경사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도시를 침략하려는 적군은 성문까지 힘겹게 올라와야만 했다. 성문은 이후 계속해서 도시를 방어하는 수단을 사용되었다가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재건축되면서 탑이 더해져 보안이 더욱 강화되었다. 아마 삼손도 이 성문을 통과하여 아스글론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이 강력하게 요새화된 성문을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이 왜 아스글론을 정복하지 못했는지 이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스글론의 성문에서 시작된 도로는 항구까지 연결되어 있다. 이 도로를 따라가다가 발견된 것이 바로 유명한 청동 송아지상이다. 10cm X 10cm 크기의 작은 청동상은 상당 부분이 벗겨지기는 했지만 은으로 덮혀 있었던 흔적이 보인다. 특별히 이 청동상은 함께 발견된 점토로 만든 신전 모형 안에 들어 있어 가나안의 신전들에는 신상들이 서 있었음을 상상하게 해준다. 이는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어떠한 상도 있지 않았던 사실과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송아지는 잘 알려진 것처럼 가나안의 신 엘과 바알의 상징이다. 바알은 번개를 들고 있는 비를 불러오는 신으로 역시 가나안 땅의 기후와 풍요로움에 관련이 있는 신이다. 이러한 신상은 우리에게 성서 속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호렙산 아래서 만든 금송아지상(출애굽기 32장),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세워 둔 금송아지상(왕상 12장), 그리고 은을 부어 만든 것에 제사 드리는 자는 송아지와 입을 맞춘 것과 같다(호세아 13:2)는 송아지상을 연상케 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렇게 청동으로 만든 뒤 금을 부어 입힌 조각상을 만들었지만 이러한 신상은 분명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아스글론의 송아지상과 신전모델이 도로에서 발견된 것은 도시를 출입하면서 출입의 목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드려졌던 제사에 사용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