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통묵상 272 - 히브리어로 이해하는 성경(22-6, 22-7)

2021.07.28

 

22-6 보증(시 119:122)
한국이든 이스라엘이든 사회적 문제 중 하나가 빚보증이더군요.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보증이 큰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보증의 성경적 의미는 매우 긍정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시편 119편 122절에서 “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시고 교만한 자들이 나를 박해하지 못하게 하소서”에서 '보증'의 히브리어는 아로브(עֲרֹב)입니다. 아로브는 원래 '저당'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5장 3절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하고”에서처럼 저당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것을 맡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빚보증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왕이 다스리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스라엘 사회는 보다 복잡해진 사회구조를 형성했고 특히 솔로몬 시대부터 시작된 국제외교 관계가 활발해지면서 계약관계가 보다 다양해졌습니다.

개인적인 보증 및 담보, 국가가 감당해야 할 부채나 조공 등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이 무척 버거웠을 것입니다. 잠언 22장 26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 잠언 6장 1절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면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에서 '담보' 역시 히브리어 아로브(עֲרֹב)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로브(עֲרֹב)의 히브리어는 오늘날 이스라엘에서도 여전히 통용되는 말입니다. 은행이나 보증인의 아로브가 없으면 집 계약조차도 어렵지요. 이스라엘 유학시절 집을 구해야 할 마다 유대인 아로브를 찾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누가 낯선 외국인을 위해 스스로 아로브를 자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간혹 마음씨 좋은 유대인 주인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학교 학과장의 추천서나 한국 대사관으로부터 여권 공증으로만 아로브를 인정해주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시대에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아로브를 해 줄 이를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시편 119편의 시인은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저당으로 맡길만한 것을 주시든지 보증인이 되어주시든지 간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보증이 되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사건이 바로 그 보증이었던 것입니다.


22-7 겸손한 자(잠 3:34)
예수님의 산상설교 중 여덟 가지의 복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중 첫 번째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가난한 자의 히브리어가 ‘아니님’(עֲנִיִּים)입니다. 신약성경학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습니다. '가난'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지요. 가난은 당시 갈릴리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늘 따라다니는 말이었습니다. 아무리 비옥한 땅을 일구고 살았던 갈릴리 사람들일지라도 로마정부로부터 배당받는 엄청난 세금과 예루살렘 성전세 등 각종 세금으로 인하여 삶이 피폐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들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받았던 정신적 혹은 영적 차별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최소 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던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꼭 지켜야 할 예루살렘 방문이 그렇게 녹녹치 않았습니다. 일상을 멈추고 몇 달씩 다녀와야 하는 부담은 고스란히 경제적 정신적 신앙적 부담으로 남게 되었지요. 이처럼 다양한 관점에서 갈릴리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에서부터 내려오는 '가난은 사실 겸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잠언 3장 34절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에서 '겸손한 자'의 히브리어가 아니임(עֲנִיִּים)인데 심령이 가난한 자의 헬라어와 동일한 표현입니다. 물론 아니임은 경제적 가난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심령이란 단어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는 신약성경에서는 찾을 수 없고 구약성경에서 비슷한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경제적인 가난을 가리키는 말보다 신앙적인 겸손함을 나타내는 말이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퀴즈: 22-5에서 살펴본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 혹은 '거룩함'의 히브리어는 무엇일까요?

클로징 : 요즈음 우리 믿는 이들이 즐겨 사용한 말들 중에 거룩한 부담, 거룩한 삶, 거룩한 결정, 거룩한 마음 등이 있는데 사실 거룩과 관련된 신앙적인 표현을 우리는 자주 사용합니다. 하지만 거룩함은 오직 하나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어울리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의 다른 것을 거룩한 것으로 세운다면 그것 자체가 우상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카도쉬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하나는 거룩함이고 하나는 우상 혹은 창기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꼭 알아야할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거룩한 삶이란 우상이나 세상의 더러움과 싸우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은 끊임없는 도전과 다툼의 삶이기도 하지요. 시편 95편 8절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므리바는 다툼이나 겨룸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을 때 마라에서 만난 쓴 물을 단물로 바꾸는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하고 나서 또 다시 르비딤에서 물이 없다는 것으로 하나님을 원망했던 사건과 연결되어 있지요. 약속의 땅에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싸움의 상대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었습니다.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과 영적씨름을 하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