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통묵상 170 [예언자들의 언어 - 이사야]
2021.01.06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1)
사 56:1
지금까지 우리는 이사야 전체를 통시적인 관점에 이해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저지른 죄악 때문에 유다와 열방에 임했던 여호와의 심판을 전한 제1이사야(사 1-39장), 그리고 바벨론 포로의 고난과 시온의 회복과 구원을 전했던 제2이사야(40-55장)의 본문을 묵상했다. 이제 제3이사야로 알려진 이사야 56-66장을 묵상한다. 이 본문들은 바벨론 해방 이후 시온으로 돌아와서 회복을 기다리는 백성들, 소위 ‘남은 자들’을 위한 메시지였다. 제3이사야의 예언자는 해방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대로 살지 못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임박한 심판을 전제하고 돌아서기를 간구한다. 이미 심판을 경험했던 바벨론 포로민과 달리 포로 이후 세대는 어느새 유다의 멸망과 성전파괴를 잊어버리고 죄악을 일삼던 선조들의 길을 그대로 걸었던 모양이다. 제3이사야는 그들을 “악한 자들”(사 57:1)이라고 불렀으며 끝까지 시온의 회복을 기다리던 자들을 “의인들”(사 57:1)이라고 가리켰다. 제3이사야의 시작인 이사야 56장은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고”(1절)을 촉구했으며 “안식일을 지키며”(4절) “여호와와 연합하여”(6절) “만민이 기도하는 집”(7절)이었던 성전으로 모일 것(8절)을 명령했다.
역사적 배경
바벨론 제국을 비롯하여 갈대아, 메대, 엘람 등 고대 근동의 모든 나라는 새로운 강자, 즉 페르시아인 아케메네스(BC 705년경)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갔다.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가 제국의 면모를 갖춘 시기는 고레스 2세의 아버지 캄비세스 1세 시대였다. 캄비세스는 메대의 마지막 왕이었던 아스티아게스(Astyages, BC 585-550년)의 딸 만다나(Mandana)와 결혼하면서 메대와 연합할 수 있었다. 페르시아와 메대의 연합군은 주변 세력을 하나씩 점령했으며 결국에는 바벨론 제국에 대항하면서 페르시아 제국의 시대를 열었다. 캄비세스와 아스티아게스 사이에 태어난 고레스 2세(BC 560-530년)는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나보니두스(BC 556-539년)을 무너뜨리면서 명실공히 페르시아 제국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고레스는 외할아버지의 나라 메대마저 점령하면서 BC 330년경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당하기까지 북서쪽의 헬레스폰트와 남서쪽의 나일 강에서 동쪽의 인더스 강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지님으로써 고대의 모든 제국들 가운데 가장 거대한 제국의 하나를 일으켰다.
우리는 페르시아 제국의 등장에 앞서 바벨론의 나보니두스와 그의 아들 벨사살을 기억해야만 한다. 앗수르 지역 출신이었던 나보니두스는 집권 말기에 제국을 그의 아들 벨사살을 내세워 섭정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다니엘서에 나타난다.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단 5:30-31). 여기서 ‘갈대아’는 갈대아 출신의 느부갓네살이 일으킨 바벨론 제국을 가리키며 ‘벨사살’은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의 아들을 가리킨다. 벨사살을 죽인 ‘메대 사람 다리오’는 고레스 2세의 아들 다리우스 1세(BC 522-486년)의 이름이지만 학자들은 고레스 2세, 즉 고레스 대왕(Cyrus the Great)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고레스 원통’(Cyrus Cylinder)으로 알려진 문헌에 따르면, 바벨론의 주민들은 고레스를 정복자가 아닌 해방자로 환영했다고 한다. 런던에 있는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에 보관되어 있는 ‘고레스 원통’은 고레스 왕이 다른 정복자들과 달리 속국 민족의 종교와 신앙을 인정하는 계몽 정책을 실시했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발 강가의 유대인 게토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유다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해방을 맞게 된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이것은 아람어로 남아있는 에스라 1:2-4, 6:3-5에서도 확인된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스 1:2). 제2이사야로 알려진 이사야 예언자가 고레스 왕을 “내 목자”(사 44:28, 로이/רֹעִי),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사 45:1, 메쉬호/מְשִׁיחוֹ)라고 불렀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정의와 의(사 56:1)
이사야 56장은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1절)고 촉구하며 시작하고 있다. ‘정의’와 ‘의’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주로 ‘정의’와 ‘공의’로 번역된 ‘미쉬파트’(מִשְׁפָּט)와 ‘쩨다카’(צְדָקָה)이다. 바벨론 포로 상황에서 외쳐야만 했던 ‘정의’와 ‘공의’는 제2이사야에서는 단 한 번도 같이 나타나지 않았던 반면에 해방된 이후에 예루살렘에서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위 신명기 사가(Deuternomist Historian)의 언어가 다시 사용되었다(신 16:18, מִשְׁפַּט־צֶדֶק). 바벨론 포로 이전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위협했을 때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회개촉구와 온전한 제사의 회복을 예언하면서 쉬지않고 외쳤던 언어가 곧 공의와 정의였다.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렘 9:24).
시온으로의 귀환은 정의와 공의의 회복을 이룬 점에서 이스라엘 역사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바벨론 포로 이전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사야 56장은 안식일 준수를 외면하면서 우상을 숭배했으며(사 56:2-8), 사회적 불의를 일으키며 탐욕의 죄악으로 물든(사 56:9-12) 이스라엘에 대해 강력히 고발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약속하신 구원을 시온으로의 귀환으로 이루셨지만 그 구원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유대인들이 겪는 고통과 울부짖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유대인들의 ‘거짓’ ‘악행’ ‘죄악’은 정의와 공의에서 점점 멀어지게 했다 (사 59:4-15).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면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약속도 먼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