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에서 읽는 성서시대 역사와 문화 28-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2022.07.02

복음서에서 읽는 성서시대 역사와 문화 28-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지난 회에서 우리는 성서 시대의 세금과 세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전 6세기 이후 동전이 주조되면서 이스라엘의 통용 화폐는 그 땅을 정복한 나라가 누구냐에 따라 변화를 거쳤고 세금은 당연히 통치 국가의 화폐로 징수되었다. 로마가 통치했던 신약 시대 이전 팔레스타인 지역은 알렉산더 대왕(재위 주전 336~323년)에 의한 정복으로 헬라 시대라고 불렸고 셀레우코스 왕조가 지배하면서 ‘드라크마’가 기본 화폐 단위로 사용되었다. 드라크마는 헬라어 동사 드라소마이(δράσσομαι, ‘소수의’ 또는 ‘손잡이’의 의미)에서 유래했는데 주전 1100년 경 그리스 화폐의 형태로 사용된 금속 막대기(주로 청동)였던 오볼로이/오벨로이 6개를 한 움큼 잡은 것을 의미했다(사진 2). 오볼로이/오벨로이와 달리 드라크마는 은으로 주조하였다. 고대 그리스는 동전을 각 도시마다 자체 제작하여 사용하였으며 이름도 달랐다. 도시의 식별이 가능한 상징으로 표현되었는데 아테네의 테트라드라크마(4 드라크마)는 올빼미가, 고린도의 동전에는 말이 등장했다. 정확한 교환 가치는 각국의 가치가 반영된 양과 품질에 따라 결정되었다. 드라크마의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준 무게는 아테네에서는 4.3g이 조금 넘었는데 후에 약 6g 정도 되었다. 후대에 가서 드라크마의 앞면에는 뿔 달린 신으로 표현된 왕의 초상이 뒷면에는 왕이 섬기는 신의 모습이 묘사되었다(사진 2). 1 드라크마는 고대 그리스 숙련 노동자의 1일 임금이었다. 배심원의 경우는 반 드라크마를 받았는데 3인 가족의 하루 생활비로 충분했다고 보고 있다. 

 

로마가 팔레스타인을 비롯 지중해 지역의 패권을 잡으면서 더 이상 드라크마는 사용되지 않았다. 통치 국가가 로마로 바뀌자 로마의 통용 화폐였던 ‘데나리온’(denarius, 복수 denarii)이 사용되었다. 덕분에 드라크마는 화폐로서의 가치는 잃어버렸다. 그러나 은으로 주조했기 때문에 값비싼 금속으로서의 가치는 살아 있었다. 신약시대 유대인들은 결혼 할 때 남편이 아내에 대한 사랑의 증표로 10개의 드라크마를 줄에 꿰어 선물하였다. 이것은 화폐가 아닌 은 의 가치를 선물한 것이다. 여인들은 이 증표를 사용해 자신의 머리를 장식했다. 누가복음 15:8~10에서 한 여인이 10개의 드라크마 중 한 개를 잃어버려 그것을 찾기 위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은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었으리라 본다. 그것을 찾자 그녀는 이웃을 불러 모으고 기쁨을 나누었다. 결혼식의 머리 장식에 9개의 ‘드라크마’만을 꿰어 쓰고 있다면 그녀에게는 어쩌면 수치였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습의 흔적은 지금도 베두인 신부의 머리 장식에서도 볼 수 있다. 

 

청동 주화를 사용하던 로마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약 4.5g 무게의 은화를 주조하여 데나리온이라고 불렀다. 데나리온의 의미는 ‘열을 포함하는’으로 초기 1 데나리온은 나귀 10마리의 가치가 있었다. 로마의 데나리온은 주로 이탈리아 남부의 네아폴리스에서 주조되었다. 데나리온은 공화정 시대가 끝나갈 무렵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아우구스투스의 통치 아래 무게는 3.8그램으로 유지되었다. 주후 3세기 초 안토니니아누스(antoninianus)라 불리던 로마제국의 동전이 발전하면서 3세기 후반에 3g의 무게로 줄여 사용되다가 사라졌다. 데나리온은 보급품을 사거나 노동자나 군인의 하루 품삯으로 사용되었는데(마 20:2; 요12:5) 그리스의 드라크마와 같은 가치를 지녔다. 아우구스투스 치세에 백부장은 적어도 연간 3,750 데나리를 받았고 가장 높은 직급은 15,000 데나리를 받았다. 데나리온은 주전 4년부터 주후 100년 사이 각 시대 로마를 다스렸던 12명의 황제의 초상이 주조되었다. 뒷면은 주로 황제를 수호하는 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신약 시대 유대인들은 데나리온으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냈다(마 22:15~22; 막 12:13~17; 눅 20:20~26). 예수께서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라고 묻자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가이사의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 때 로마를 다스렸던 황제는 티베리우스(Tiberius 디베료 주전 42~주후 37년) 황제로 그의 데나리온의 앞면에는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TI CAESAR DIVI AUGF AUGUSTUS)라는 글귀와 함께 월계수 관을 쓰고 있는 그의 초상이, 뒷면에는 “대제사장”(PONTIF MAXIM)이라는 단어와 대추야자 나무(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앉아 있는 평화의 여신이 표현되어 있다(사진 3). 예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흔히 “가이사의 것”이라는 표현이 황제의 얼굴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동전의 뒷면에는 대부분 황제가 섬기는 신의 모습이 있어 이 말씀에 보다 깊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유대인들에게 다른 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동전을 사용하는 것은 비록 통치 국가의 통용 화폐라고는 하나 율법에 위반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말씀 이전에 성경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행위에 대한 비난을 비유를 들어 말씀하고 계신 것으로 보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의 의미는 잘못된 신앙의 방향에 대한 지적까지 의미한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의 유명한 예화인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30~37)에서도 데나리온이 등장하는데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를 여관에 맡기면서 2 데나리를 지불한다. 당시 여관의 숙박비가 1/20 데나리온이었다고 추정하고 있어 사마리아인이 맡긴 금액은 상당한 비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데나리온은 “돈”의 단위로 다양한 국가의 언어에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때 동로마제국에 속했던 땅의 많은 부분을 정복한 아랍인들은 그들만의 금 디나르를 발행했다. 영국의 페니의 약어는 ‘d'이며, 주요 통화 단어 중 이탈리아의 데나로(denaro), 슬로베니아의 데나르(denar), 포르투갈의 딘헤이로(dinheiro), 스페인의 디네로(dinero)에 남아 있다.

 

* 본 글은 국제성서박물관 “고대 이스라엘의 동전”(임미영 저) 도록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사진 1. 오볼로이/오벨로이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Obolos2.jpg

 

사진 2. 드라크마, 리시마쿠스(주전 323~281년), 국제성서박물관 소장사진 출처: “고대 이스라엘의 동전”, 국제성서박물관

 

사진 3. 데나리온, 테베리우스(주전 42~주후 37년), 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ribute_pen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