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에서 읽는 성서시대 역사와 문화 27 - 세금

2022.06.23

네이버 검색을 통해 찾은 세금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한 경비로 사용하기 위하여 법률에 의거하여 국민으로부터 강제로 거두는 금전 또는 재화”이다. 화폐가 존재하기 이전에도 사람들은 노동이나 곡물, 금, 가축과 같은 재화의 형태로 통치자에게 세금을 냈다. 세금을 내는 것은 분명 국가를 유지하고 국민 생활의 발전을 위한 국민의 의무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금에 대한 불평을 말한다. 아마도 자신들이 내고 있는 세금의 양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국가의 도움이 세금과 비례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온갖 묘수를 부려 체납을 하는 경우도 많다. 세금에 대한 이런 견해는 고대에도 비슷했다. 심지어 신약 시대처럼 다른 나라의 통치 아래 거두어지는 세금에 대한 불만은 더 컸었다.  

정복당한 사람들은 정복자들에게 세금으로 공물을 바쳐야만 했다. 지중해 세계를 재패하면서 그리스와 로마는 점점 더 복잡한 조세 제도를 발전시켰다. 알렉산더가 정복한 헬라 도시들은 그리스에 막대한 공물을 바치도록 강요당했다. 매년 국가에 직접 납부하는 직접세가 있었는데 그리스 시민이라면 직접세는 내지 않았다. 직접세를 납부할 수 없는 이들은 노예가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간접세도 납부해야했는데 여기에는 관세와 소비세가 있었다. 관세는 여행을 하거나 물품을 들여오고 나가는데 드는 수수료였다. 항구와 관문마다 내야하는 통행료도 관세에 해당됐다. 소비세는 현대인들이 상품을 구매할 때 내는 수수료와 같은 개념으로 각 품목의 약 1%에 해당하는 세금이 부가되었다. 일반적인 비즈니스 거래에도 소비세가 포함되었는데 매춘에도 세금이 부가되었다. 그리스의 경우 많은 세금 징수원을 두지는 않았다. 국가는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하는 이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때 경매를 통해 계약자가 되는 일을 구매하게 하였다. 세금 징수의 권한을 사게 된 징수원은 본 세금 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자신의 주머니를 채웠고 세금을 내지 않는 이들을 노예로 만들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로마는 그리스 특히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금 제도를 채택하여 사용했는데 점차 복잡해지면서 전문적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직업이 생겼다. 로마의 세금을 징수하던 세리는 헬라어로 텔로네스(τελώνης), 라틴어로는 퍼블리카누스(publicanus)라고 불렸는데 로마 항구에 관세를 징수하여 군단과 군대에 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세리는 공공건물을 건설하고 광산을 운영하는 등 공적인 일을 수행하면서 이를 위한 세금을 징수하는 일까지 하였다. 세리는 로마 군단의 기수 계급에 속했지만 주목 받는 관료는 아니었다. 주전 1세기 후반 공화국이 사라지고 로마가 제국의 길로 들어서면서 세리의 역할은 점점 커졌고 불만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자리가 커진 세리들은 지방 속주에 세금을 징수할 부하 세리들을 임명했다. 로마는 사람, 토지, 가축, 올리브, 기름, 곡물, 포도주, 맥주, 생선, 빵, 소금, 심지어 비둘기와 비둘기 둥지까지 세금을 징수했다. 사람들은 관개용 도랑과 토지, 대중목욕탕 유지에 세금을 냈다. 모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특별세를 냈으며 모든 거래에 세금이 부과되었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로마 시민권을 가진 이들은 금융 위기 동안 외에는 일반적으로 세금을 바칠 필요가 없었다. 대신 로마는 지방의 정복당한 속주에게 과도한 세금을 징수했기 때문에 지방 통치자들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로마는 조세 제도를 지원하기 위해 인구 조사와 토지 측량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시스템을 개발했다. 인구 조사를 통해 시민권자와 비시민권자를 식별하여 세금 징수 목록을 만들었고 토지 측량을 통해 토지 소유자에 부과할 세금의 정확한 판단을 위한 지도를 그렸다. 세리는 보험 사기. 과도한 세금 징수, 광산에서 일하는 노예들에 대한 잔인한 행위, 수익성 없는 공공 계약을 파기하는 등의 불의에 대하여 기소되기도 했다. 1세기 유대 철학가 필로(Philo 주전 20~주후 50년)는 그가 거주했던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의 세리가 가난해서 세금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을 모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납세자의 아내, 자녀, 부모까지 구타했다고 기록했다. 세금을 내지 못해 도피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을 때, 추심원과 그의 대리인은 고문은 물론 살해당했다. 덕분에 그 누구도 납세를 하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의 편을 들어주지 못했다. 비슷한 사건이 로마 제국 전역에서 일어났고 사람들은 세리를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멸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성경 속의 세리와 세금은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거론되곤 한다. 이스라엘의 세금에 대한 기록은 구약에서부터 찾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골리앗의 무례함에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삼상 17:25)고 선포되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영웅적 일로 국가에 봉사했을 때 세금면제는 상당히 큰 혜택이며 백성들의 귀가 솔깃할 만한 유혹거리였다는 것이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세금에 대한 부담을 꽤 무겁게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이 부담은 더욱 커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로마 즉 다른 강대국의 통치 아래 있었던 이스라엘의 세금은 그 양 뿐만 아니라 세금 징수와 관련한 갈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금을 걷는 세리를 죄인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모습은 로마의 세금 징수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마 5:46; 9:10; 11:19; 21:31~32; 막 2:15~16; 눅 5:30; 7;34; 18:11). 예수께서 세리였던 삭개오의 집으로 가고자 했을 때 사람들은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고 말하고 있다. 성경은 그가 여리고의 세리들 중 우두머리로 세리장이었으며 “또한 부자였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가 지은 죄는 같은 민족에게 징수한 과도한 세금과 이를 위해 행했던 그의 잔혹함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세리라는 직업으로 축적하게 된 자신의 부유함을 나누어 줌으로 죄를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

 

사진 1. 주후 1세기 청동으로 만든 로마의 주판, 고고학 박물관, 아오스타 이탈리아
사진 출처: https://www.worldhistory.org/image/2147/roman-abacus/

 

사진 2. 주후 3세기 묘지 비석에 묘사되어 있는 주판으로 계산하고 있는 세리의 모습, 예술과 역사 박물관, 메츠, 프랑스, 사진 출처: https://factsanddetails.com/world/cat56/sub408

 

사진 3. 주후 3세기 묘지 비석에 묘사되어 있는 세금을 내는 사람과 세리, 
라인시 주립 박물관, 트리어
사진 출처: https://factsanddetails.com/world/cat56/sub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