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통묵상 417 - 바울의 언어에서 듣는 구약성경(7)

2022.04.24

말통묵상 417 - 바울의 언어에서 듣는 구약성경(7)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롬 4:3)

바울이 로마서 3:4에서 시편 51:4을 인용했을 때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하려고 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철저하게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하나님의 약속은 실현된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다'는 근거를 밝히기 위하여 로마서 4장의 서두에서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야기를 인용한다. 바울의 아브라함 이야기는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1절), 즉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은 ‘육신으로’(1절)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3절)에 근거한다는 이슈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의로우심(롬 3:24-26)은 ‘육신으로’(κατὰ σάρκα)가 아닌 ‘믿음으로’(ἐκ πίστεως)에 근거하는 바울의 주장은 로마서 3:29-31에서 이미 확인된다. “할례자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30절)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유대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율법을 “믿음의 법”(롬 3:27, διὰ νόμου πίστεως)과 대조하면서 ‘유대인의 율법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선언한다.

이와 같이 바울이 로마서 4장 서두에서부터 아브라함 이야기를 소환한 이유가 바로 아브라함이 ‘혈통으로’ 곧 ‘육신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이신칭의)을 조명하는데 있다. 그렇다고 바울이 유대인들의 율법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지 않다. 바울은 하나님을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으로 여기는 유대인들의 편협한 신앙을 비판하기 위하여 유대교의 성경인 ‘토라’의 첫번째 책 곧 창세기 본문을 인용한다.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MT - ‎וְהֶאֱמִ֖ן בַּֽיהוָ֑ה וַיַּחְשְׁבֶ֥הָ לּ֖וֹ צְדָקָֽה
LXX - καὶ ἐπίστευσεν Αβραμ τῷ θεῷ καὶ ἐλογίσθη αὐτῷ εἰς δικαιοσύνην

롬 4:3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NA28 - ἐπίστευσεν δὲ Ἀβραὰμ τῷ θεῷ καὶ ἐλογίσθη αὐτῷ εἰς δικαιοσύνην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바울은 로마서 4:3에서 접속사와 아브라함의 이름 변경 이외에 창세기 15:6의 핵심내용을 그대로 인용한다. 로마서 4:3은 1절의 수사적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을 취한다. 바울은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롬 4:1)의 수사적 질문으로 로마서 3장의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했다. 즉, 바울은 아브라함이 ‘육신으로’ 혹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의 의를 따른 사람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실현했다는 사실을 밝히려고 했다. 바울의 창세기 인용 목적은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있다.

바울은 로마서 4장내내 아브라함 이야기를 이어간다. ‘육신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게 한다는 아브라함 이야기는 ‘할례자’만이 아니라 ‘무할례자’ 곧 이방인조차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이것은 바울이 ‘어떻게’ 아브라함이 ‘의로 여김’을 받았는지의 문제에서 ‘언제’의 문제로 관심을 돌린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의로 여김을 받았는가 혹은 할례를 받고 난 후에 의로 여김을 받았는가? 아브라함의 할례 시점에 관한 질문은 아브라함이 의로 여김을 받은 후에 그의 ‘자손’로 의로 여김을 받는지에 대한 의미를 갖는다. 로마서 4:12에서 바울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무할례자인 이방인들도 ‘믿음으로’(ἐκ πίστεως) ‘의로 여김’(ἐλογίσθη εἰς δικαιοσύνην)을 받으며,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πατὴρ πάντων ἡμῶν, 16절) 혹은 “많은 민족의 조상”(πατέρα πολλῶν, 17절)이 된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유대 기독교인과 이방 기독교인을 하나로 통합시켜 새로운 백성을 창조하기 위한 약속으로 다뤘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