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통묵상 420 - 바울의 언어에서 듣는 구약성경(10)

2022.05.07

말통묵상 420 - 바울의 언어에서 듣는 구약성경(10)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릴 것이다”(롬 9:7b)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이 인용한 시편 44편은 로마서 전체에 드리운 이슈들과 결부되어 로마서 9-11장에 나타난 이스라엘 혹은 하나님 백성의 운명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을 제기한다. 로마서 9장 서두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 진 것이 아니다’(6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구약성경 전체에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택하심’(11절)에 관한 이야기를 증언한다.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한 바울의 구약인용은 창세기 21장의 ‘아브라함의 씨’ 이야기, 즉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릴 것이다”(롬 9:7b, 창 21:12)에서 시작한다. 아브라함-이삭 내러티브에서 창세기 21장 ‘아브라함의 씨, 이삭’ 이야기는 창세기 22장 ‘아케다 사건’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한 약속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

로마서 9:7b
개역개정 –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릴 것이다”
NA28 - ἀλλ· ἐν Ἰσαὰκ κληθήσεταί σοι σπέρμα

창세기 21:12
개역개정 -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MT – ‎כִּי בְיִצְחָק יִקָּרֵא לְךָ זָרַע׃
LXX - ὅτι ἐν Ισαακ κληθήσεταί σοι σπέρμα

위 역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바울의 구약인용 본문(롬 9:7b)은 맛소라 본문(MT)과 칠십인 역본(LXX)과 동일하다. 바울은 구약본문 인용에서 예언자들의 언어와 달리 아브라함 내러티브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하지만 로마서 9:7a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라는 바울의 주장은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바울은 독자들의 혼란을 해소하기 위하여 곧바로 설명을 덧붙인다(롬 9:8a).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8a절)는 주후 1세기 유대교의 성경해석 방법 중 하나였던 ‘페쉐르’(본문을 한 줄 씩 인용하고 각각의 줄을 짧게 주석하는 방식)로 바울은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삭이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8b)라고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로마서 9:9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가 창세기 18:10, 14을 넌지시 인용하는 것처럼 이삭의 출생이 이미 약속되었다는 사실을 바울이 확신하고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바울은 창세기 본문 인용에서 이삭과 약속 사이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아브라함의 자녀들 중에서 이삭이 특별하게 택하심을 얻었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한 바울의 구약인용은 창세기 21:12, 18:10, 14에서만 한정하지 않았다. 창세기 21:12 인용구, 즉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릴 것이다”에 나타난 핵심 단어들은 로마서 9:25-29(호세아와 이사야서 인용)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학자들이 언급한 본문비평장치 중 하나인 ‘인클루지오’(inclusio – 단락의 처음과 끝을 수사적으로 병렬시키는 문학적인 장치로서, 일종의 수미상관이라고 볼 수 있다)를 발견한다. 즉, 바울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증언하기 위해 다양한 구약본문들을 인용하면서 인클루지오의 문학적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릴 것이다”을 로마서 9:7b(아브라함 인용)와 25-29절(호세아와 이사야 인용)에 단락의 처음과 끝에 배치하고, 하나님의 택하심과 관련된 구약 이야기들 가운데 아브라함, 사라, 이삭(7-9절), 야곱과 에서(10-13절), 모세와 바로(15-18절), 토기장이와 진흙(2-23절)을 단락의 중심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서 9:14에서 외친 수사적 질문, 즉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에서 대한 대답을 ‘하나님의 택하심에 따른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된 구약본문 인용’에서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