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통묵상 418 - 바울의 언어에서 듣는 구약성경(8)

2022.05.01

말통묵상 418 - 바울의 언어에서 듣는 구약성경(8)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 8:36) I

로마서는 ‘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에 관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 우리가 읽는 로마서 8장은 전반부(1-8장)와 후반부(9-16장)로 구분되는 로마서 전체에서 전반부 마지막 장면이다. 로마서 전반부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만 인간은 여전히 반역과 죄의 상태에 머물러 있고 이스라엘은 메시아의 약속에 대하여 회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상황을 보여준다. 전반부 마지막 8장에서 바울은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는 고난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특히 8장 끝자락은 구약성경 시편 44:22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신실하심으로 고난의 고통에 처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얻을 구원을 약속한다.

롬 8:36 -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NA28 - 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 ὅτι ἕνεκεν σοῦ θανατούμεθα ὅλην τὴν ἡμέραν, ἐλογίσθημεν ὡς πρόβατα σφαγῆς

시 44:22 –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MT - ‎כִּי־עָלֶיךָ הֹרַגְנוּ כָל־הַיּ֑וֹם נֶחְשַׁ֗בְנוּ כְּצֹאן טִבְחָֽה
LXX - ὅτι ἕνεκα σοῦ θανατούμεθα ὅλην τὴν ἡμέραν ἐλογίσθημεν ὡς πρόβατα σφαγῆς

로마서 8장에 대한 주석가들은 바울이 바벨론 포로 시대의 이스라엘의 고통을 가지고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의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한다고 말한다. 크랜필드(Cranfield)는 “여기서 구약 인용구는 기독교인들이 겪는 고난이 기대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하나님의 백성을 특징지어 온 것임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헤이스(Hays)는 로마서 8:35-36의 핵심이 “의로운 백성이 이와 같이 종일 고난을 받는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과 세상의 궁극적 구원 사이의 종말론적 시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받을 고난이 구약에 이미 예언되었다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바울이 로마서 8장에 인용한 시편 44:22의 배경은 본래 이스라엘의 고통을 무시한 채 잠든 여호와에 대한 시편 기자의 불만을 드러낸 부분이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릴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23-24절). 시편 기자의 수사적 질문들은 바울의 로마서 질문들과 맞아 떨어진다(롬 3:1-8, 27-31). 이스라엘 민족 혹은 그리스도인들의 현재적 고난과 고통의 경험은 과연 하나님이 백성들을 버리셨다는 것일까? 시편 44편은 하나님이 실제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절망스런 고백(10절)로 시작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을 향한 구원을 요청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24절). 이러한 구약의 반향(reflection)은 로마서 11:1에도 나타난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롬 11:1). “그럴 수 없느니라”고 고백하는 바울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자가 없다고 말하는 로마서 8:31-39의 수사적 질문 혹은 대답과 동일하다. 다시 정리하면, 로마서 8:36에서 바울이 한 차례 인용한 시편 44:22은 로마서의 중심적인 이슈인 이스라엘과의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신실하심, 즉 하나님의 진실성에 관한 문제를 부각했다.

로마서 8:36의 시편 44:22 인용에서 우리가 살펴야 하는 것이 몇 가지가 더 있다. 우선 우리말 번역에서 ‘주를 위하여’(ἕνεκεν σοῦ)의 본문을 살펴보면, 구약본문 히브리어(עָלֶיךָ)와 헬라(ἕνεκα σοῦ) 번역들은 ‘주를 위하여’가 아니라 모두 ‘당신을 위하여’로 나타난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과 그리스도인들, 즉 하나님의 백성이 겪는 고난이 우상숭배나 불신앙으로 비롯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신실함으로 인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바울은 시편기자가 당당하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호소하는 장면(시 44:26)을 인용하면서 이방인들을 포함한 고난과 고통을 겪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자하심 곧 하나님의 사랑을 간구한 것이다(롬 8:39).

이제 우리는 로마서 8:36의 시편 인용(44:22)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 “도살할 양”(πρόβατα σφαγῆς)에 대하여 묵상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