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통묵상 349 - 성경 뒷 이야기(68)

2022.01.05

예루살렘 이야기(2) 

다윗성
다윗은 이스라엘 왕이 되었을 때 유다 지파의 중심지인 헤브론 보다는 12지파 전체를 다스릴 수 있는 단일왕국의 수도가 필요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던 이유는 우선적으로 예루살렘의 지정학적인 위치때문이었다. 예루살렘은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의 중앙부에 위치했고 기혼샘을 통한 풍부한 물이 넘쳐흘렀고 동쪽에는 기드론 골짜기를 끼고 있어 방어에도 유리했다. 예루살렘의 원주민이었던 여부스 사람들을 물리치고 단일왕국의 수도를 세웠고 그 곳이름을 다윗성이라고 불렀다(삼상 5:6-7).

우리는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용맹한 소년 다윗과 자신의 일생을 노래로 담은 시인 다윗과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기름부은 받은 이스라엘 왕 다윗을 기억한다. 그의 역사적 존재나 업적에 대해 우리는 한치의 의심도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 고고학과 역사학에 있어 심지어 신학계에서 조차 다윗과 그의 궁전을 주제로 다루는 일들이 한때 꺼린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생소할 수 있으나, 다윗은 성서 외에 고대 근동의 어떤 문헌에도 등장하는 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윗에 대한 미미한 흔적들 때문에 소위 최소주의자(minimalist)라 불리는 텔아비브대학교 고고학과의 수장인 이스라엘 핑켈쉬타인 (I. Finkelstein) 박사는 그의 여러 저서를 통해 다윗은 작은 마을의 기초를 쌓은 영웅적, 신화적 존재일 뿐이라고 밝혀왔다. 단지 1994년 텔 단에서 발견된 아람어로 기록된 9세기경의 승전비에 의하면 남왕국 유다의 왕의 계보를 다윗의 집(혹은 왕가)이라고 불렀다는 의견이 제시될 뿐, 정확하게 다윗을 역사적 인물로 드러낼 수 있는 증거가 없다. 더불어 다윗이 여부스인들을 몰아내고 수도로 선택한 후 두로왕 히람의 도움을 받아 건설했다(사무엘하 5:11)는 예루살렘의 궁전은 아직까지 발견된 바 없었다.

1960년대 영국의 고고학자 캐더린 캐년 (K. Kenyon)은 다윗 성의 북부 언덕부분에서 벽을 발견했고 이를 솔로몬의 시대로 그 연대를 측정했을 뿐 다윗의 궁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최근 히브리대학교의 에일랏 마잘(Eilat Mazar)박사는 다윗 성의 북부 언덕부분을 발굴하였고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전의 많은 학자들은 다윗의 궁전이 여부스인들이 세운 성벽 안에 위치해 있었다고 상상했고 주로 다윗성의 중앙부분에서 탐사를 해왔다. 마잘 박사는 사무엘하 5: 17에 의하면 블레셋인들이 다윗의 재위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으로 치러 오자 다윗은 요새로 내려갔다(한국 개역개정성경은 나가다라고 번역함)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근거로 그녀의 견해를 펼쳐 나갔다. 마잘 박사는 성경에서 분명 다윗이 내려갔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의 궁전이 높은 장소에 위치해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하면서 급한 경사면을 이루고 있는 다윗 성의 북쪽 끝자락 높은 장소를 조사해나갔고 건물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발견된 그릇들과 그리핀(날개달린 신화적 동물)과 풍뎅이로 조각된 인장, 베니게 양식으로 만들어진 상아 조각판 등은 모두 이스라엘 왕국 초기인 10세기경의 연대로 측정되었다. 마잘 박사는 캐년 여사의 발굴 결과물들 중 G구역의 “계단식 구조물(Stepped-stone structure)"로 이미 잘 알려진 경사면의 구조물이 최근 자신이 발견한 건물을 지탱해 주는 역할이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다윗의 궁전으로 추정되는 건물 벽과 접해 있는 경사면에서 프로토 에올릭(혹은 프로토 이오닉)이라고 불리는 기둥머리가 캐년 여사에 의해 발견되었음을 찾아냈다. 이 기둥머리는 이미 베니게 양식의 기둥머리로서 10세기경부터 므깃도, 하솔등과 같은 이스라엘의 여러 행정도시를 건설하는데 사용되었음이 밝혀진 바 있는 유물이다.

우리는 다윗의 궁전이 두로 왕 히람이 보낸 목수와 석수 즉 베니게 양식으로 궁전이 지어졌음을 이미 성경을 통해 알고 있고 이러한 기둥머리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 아닐 것이다. 1980년대 이갈 실로 (Y. Shiloh) 박사에 의한 이 지역의 발굴에서도 또한 유사한 기둥머리들이 여러개 발견된 바 있다. 마잘 박사는 현재 예루살렘의 황금돔이 있던 예루살렘의 가장 높은 부위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고 그 옆에 솔로몬의 궁전이 있었다면 이 궁전이 느헤미야 3:25에서 말한 “왕의 위 궁”이며 다윗성에 있었던 다윗의 궁전은 “아래 궁”으로 불렸을 것이고 왕의 행정 건물로서 계속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다윗의 궁전을 베니게식으로 지어진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물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복원도를 구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