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에서 읽는 성서시대 역사와 문화 12 - 헤롯의 궁전

2021.11.21

복음서에서 읽는 성서시대 역사와 문화 12 - 헤롯의 궁전

 

별을 보고 유대의 왕에게 경배하기 위해 동방에서부터 찾아 온 박사들이 먼저 도착한 곳은 헤롯의 궁전이었다. 요세푸스는 헤롯이 헤로디온, 마사다, 가이사랴, 사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도 얼마나 아름다운 성전과 궁전을 건설했는지 기록하였다. 현대에 우리는 근사한 건물을 보면 건축가가 누구인가 알아보게 되고 그 건물이 건축에 관련된 상이라도 탔다면 건축가의 명성을 기억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고대에도 유명한 건물에는 누가 건축에 참여했는지 기록이 남아 있다. 특이한 것은 헤롯이 남겨 놓은 화려한 건물들에는 건축가가 누구였는지 그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아마도 헤롯이 스스로 설계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의 건축에 대한 집착은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예루살렘의 궁전은 그가 많은 시간을 보냈던 처소로서 무엇보다 공을 들였을 것이 분명하다. 

 

헤롯의 궁전은 예루살렘의 서남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현재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사진 1). 헤롯은 앞서 하스몬 왕조가 세운 궁전을 보다 확장하고 장식하였다. 궁전은 4∼5m 정도 높게 쌓은 기반 위에 세워졌는데 남북으로 304m, 동서로 54m에 이르렀다고 한다. 주요 궁전이 있었던 자리는 현재 아랍인 개인 소유의 땅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일부 박물관으로 공원화된 ‘다윗 탑(Tower of David)'의 마당에 남겨진 흔적으로 그 모습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 터키가 이스라엘을 통치했을 때(1517∼1917) 이곳을 감옥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파손된 곳이 많아 단지 궁전의 북쪽에 있었던 몇몇 방어용 탑의 기초부분만을 볼 수 있다. 그는 이 탑들에 각각 이름을 붙였는데 특별히 그의 큰 형 파사엘과 아내 미리암, 그의 동료 히피쿠스의 이름으로 불리는 탑이 있었다고 한다. 파사엘 탑의 경우 그 높이가 무려 44m였다고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없다. 

 

로마와 그 문화를 사랑했던 헤롯은 그의 궁전에 로마 건축 양식을 도입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대리석으로 지어진 그의 궁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고 한다. 요세푸스의 설명과 고고학적 자료들을 종합해 봤을 때 헤롯의 궁전에는 로마식 기둥과 이 기둥들로 둘러싸인 정원과 연못이 있었다. 궁전 안뜰은 정원을 중심으로 아그립바와 카이사르(가이사 혹은 시저)라 불리는 두 구역으로 나뉘었는데 각 구역에는 로마의 도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목욕탕과 연회장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로마의 프레스코와 벽화 모자이크 바닥 장식 역시 헤롯의 궁전에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헤롯의 궁전에는 로마의 것과는 다른 독특함이 적용되었다. 유대인적 정통성이 없었던 헤롯은 유대인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보였는데 이 모습이 건축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유대인은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율법을 철저히 지켰고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형상이나 동물을 묘사하는 것을 피했다. 이는 마태복음 22:15~22도 등장하는데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가를 이야기 할 때 예수께서는 세금을 낼 동전을 보이라 하시며 동전에 가이사의 형상과 글이 있어 이는 가이사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형상을 묘사하는 것이 금기였던 유대인들의 동전에는 초상이나 동물 같은 살아 있는 것의 형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헤롯도 자신의 동전에 본인의 초상은 물론 로마 황제의 모습 역시 남겨 놓지 않았다. 헤롯은 예루살렘의 궁전에 화려한 연못을 두었지만 로마의 연못처럼 신상을 만들어 세워놓지 않았으며 프레스코 벽화나 모자이크 바닥 역시 사람의 모습을 남기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예루살렘에는 헤롯의 궁전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 없어 그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없다. 그러나 마사다에서 발견된 헤롯이 세운 궁전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가 유대인들의 구미에 맞는 장식으로 궁전을 꾸몄음을 볼 수 있다. 

 

만약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도망가 숨어 지낼 심산으로 헤롯은 사해 남서쪽에 위치한 높이 400m가 되는 산 위에 요새를 세웠다.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의미로 불리는 이곳 마사다에서는 헤롯의 궁전도 함께 발견되었다. 북쪽과 서쪽에 각각 궁전이 있었는데 북쪽 궁전의 경우 가파른 절벽의 경사면을 이용해 세 개의 계단식 궁전을 건축했다. 무엇보다 이 궁전에서 바라보는 유대광야와 사해의 모습이 절경이어서 헤롯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서는 궁전 외에도 로마식 목욕탕도 함께 발견되어 헤롯이 얼마나 로마 문화를 사랑했는가를 또 한 번 느낄 수 있다. 마사다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방 벽면에는 반원 형태로 석회석을 발라 로마의 대리석 기둥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진 구조물이 있으며 기둥 사이 벽면은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사진 2). 바닥은 모자이크 장식으로 채워져 있었다(사진 3). 이러한 건축 양식은 분명 로마의 모습을 흉내낸 것이지만 사람과 동물을 조각한 형상이나 벽화, 모자이크가 발견되지 않았다. 꽃과 기하학적인 문양들만을 사용해 칠을 하거나 장식을 했다. 예루살렘의 궁전 모습은 마사다의 것과 상당히 유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헤롯은 가이사랴나 헤로디움 같은 곳의 궁전에 있기도 했지만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절기에는 반드시 예루살렘에 머물렀다.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 그는 마침 예루살렘의 궁전에 머무르고 있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그의 궁전으로 찾아와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으니 경배하겠다고 했을 때 그의 불안감은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로마에게 인정을 받았고 유대 공주를 아내로 삼아 정통성을 주장했지만 진정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면 자신은 쫓겨 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분명 이 씨를 말려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록 그가 젖먹이 아이일지라도 헤롯에게 있어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나 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입지를 위해 만들어 놓았던 비밀경찰을 풀어 그에게 반감을 가질만한 모든 싹을 없애 버리는 잔혹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사진 1. 헤롯의 궁전 모형, 이스라엘 박물관 전시사진출처: 임미영

 

사진 2. 마사다에서 발견되는 프레스코 벽화와 기둥 모습사진출처: 이스라엘 박물관 기획전시 중, 임미영, 

 

사진 3. 마사다에서 발견되는 모자이크 바닥사진출처: http://www.nortfort.ru/masada/foto_f49_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