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에서 읽는 성서시대 역사와 문화 11 - 동방 박사는 어디서 왔을까?

2021.11.16

동방 박사는 어디서 왔을까? 

 

앞서 우리는 성탄절 카드에 등장하는 마구간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배경에 어김없이 묘사되는 것 중에는 마구간 위에 있는 별 하나와 목자들에 비해 상당히 화려하면서도 이국적인 의상을 입고 있는 세 명의 남자가 있다. 이 독특한 모습은 마태복음 2:1~9에서 기인한 것으로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예루살렘의 헤롯에게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을 경배하러 왔노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이 따라왔던 별이 예루살렘 즈음에 와서 사라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베들레헴이 바로 왕이 나실 곳이라는 말을 듣고 떠나자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다시 나타나 그들을 인도했다. 별은 가다가 아기 있는 곳에 머물러 섰고 그들은 드디어 아기께 경배했다.

 

안타깝게도 성경은 이 박사들의 정확한 고향과 직업 그리고 이름 등을 전혀 알려주지 않고 있다. 한국어 성경에서 그들을 박사라고 부르고 있지만 어떤 분야의 박사인지도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우리는 항상 세 명의 박사를 연상하지만 마태복음 2장은 그 숫자마저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다만 이들의 숫자를 셋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가져온 선물이 황금, 유향, 몰약 세 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숫자가 항상 당연하게 생각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로마의 도미틸라(Domitilla) 카타콤 벽화에 기록된 아기 예수 탄생의 이야기에는 4명의 박사가 있다. 또한 시리아 정교회에서는 12명의 박사가 있었다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성경에서 그들의 숫자를 전혀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 동방 박사의 숫자는 모두 초대 기독교의 전통에 의한 것일 뿐이며 고고학적으로 고증은 어렵다.  

 

마태복음 2:1은 이들이 아포 아나톨론(ἀπὸ ἀνατολῶν) 즉 태양이 떠오른 곳에서 왔다고 말하고 있으며 한국어 성경은 동방으로 번역했다. 이스라엘이 있었던 현대의 팔레스타인에서 봤을 때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에 있는 나라는 페르시아를 비롯한 그 너머의 나라들이 된다. 동쪽의 나라에서 왔을 것이라는 상상 아래 그려진 동방 박사의 가장 초기(2세기)의 모습은 프리실라(Priscilla) 카타콤의 프레스코에서 발견된다(사진 1). 3세기 중반으로 연대가 추정되는 이 프레스코에는 비슷한 키와 피부색을 갖고 있으면서 동일한 의상을 입고 있는 세 명의 남자가 동방 박사로 표현되어 있다. 이들 중 하나는 화환을 들고 있고 나머지 둘은 그릇을 들고 있다. 5세기에 와서 이들은 점차 화려한 의상을 갖춘 이들로 묘사되었고 심지어 이름은 물론 연령까지도 구체화되었다. 565년 만들어진 이탈리아 라벤나의 상트 아폴리나르 누오보(Sant'Apollinare Nuovo) 교회의 모자이크에는 대추야자(종려)나무를 배경으로 크고 화려한 그릇을 들고 우측에 있는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세 사람이 묘사되어 있다(사진 2). 이들은 상당히 화려한 페르시아 복식을 갖추고 있는데 끝이 한 번 접혀 있는 프리기안 모자와 망토를 입고 있다. 우측부터 첫 번째 사람은 흰 머리카락과 수염을 갖춘 노인으로, 두 번째 사람은 수염이 없는 젊은 청년으로, 좌측의 마지막 사람은 검은 피부에 긴 갈색 머리카락과 수염을 가진 중년의 남자로 표현되어 있다. 이들의 머리 위에는 우측부터 각각 가스파르(Gaspar), 멜키오르(Melchior), 발따자르(Balthassar)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가스파르가 들고 있는 뚜껑이 없는 그릇에는 금이 가득 들어 있다. 일반적으로 멜키오르는 유향을, 발따자르는 몰약을 바쳤다고 알려져 있다. 6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어 필사본에는 이 박사들의 출신지역까지 언급하고 있는데 가스파르는 인도, 멜키오르는 페르시아, 발따자르는 바벨론 혹은 아라비아 출신으로 말하고 있다. 이들이 바친 예물은 사실 일반적으로 왕에게 바치는 것들이었다. 금은 부귀를 위하여 몰약은 왕이 사용하는 관유를 위해 유향은 향수로 사용되는 귀중품이었다. 특별히 학자들은 이 유향과 몰약은 약용에 사용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을 박사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헬라어 성경에서 이들에 대한 호칭은 마고이(μάγοι)로 마고스(μάγος)의 복수 형태이다. 마고스는 고대 페르시아어인 마구쉬(maguŝ)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는데 후에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제사장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수메르와 바벨론 등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천문학이 발전했었고 이 전통은 페르시아로 전승되어 조로아스터교까지 이르렀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점성술을 펼치던 제사장들을 부르던 호칭 마고이는 영어에서 magic(마술)이라는 단어를 파생시켰다. 마태복음 2:2에서 이들이 헤롯에게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별을 관찰하고 점성술을 펼쳤던 마고이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 같은 단어가 사도행전 13:6~11과 8:9~13에서 마술사를 부를 때 사용되고 있다. 1611년 번역된 킹 제임스역 성경은 마태복음 2장의 마고이라는 단어는 wise men(지혜자)으로 번역했다. 이렇게 번역한 이유는 다니엘 2:48의 히브리어 표현 때문이다. 이 구절에서 다니엘은 바벨론의 왕에게 높임을 받고 지방을 다스리게 되는데 왕은 또한 그를 모든 지혜자의 어른으로 삼았다. 고대 바벨론에는 학식이 있고 모범이 될 만한 지혜자가 있었음을 감안할 때 마고이는 마술사나 점성술사가 아닌 지혜자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고 보았다. 지혜자는 한국어 성경에서 박사로 번역된 것이다. 때로 이들이 왕이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특별히 가스파르의 경우 도마 행전에 등장하는 인도-파르티아의 왕이었던 곤도파레스(Condopares)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이들을 왕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이사야서 60:1~6에 기록된 내용을 메시아의 탄생과 관련지어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을 때 즉 메시아의 탄생이 있을 때 왕들이 이 광명으로 나아올 것이며 미디안, 에바, 스바 같은 이방 나라들의 금과 유향 같은 재물을 들고 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또한 시편 72:11은 모든 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온 이들이 왕이었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들을 왕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박사들이 출발한 동방이 적어도 페르시아였다면 그들이 별을 보고 출발한 시기는 언제였을까?  고대 페르시아의 수사 즉 지금의 이란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현대에 잘 깔려진 도로만으로도 약 2,166km에 달한다. 고대에 걸어서 혹은 낙타나 말을 타고 왔다고 해도 장기간의 여행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탄생 이전에 출발한 걸까? 아니면 탄생 즈음에 출발한 걸까? 4세기 이후 기독교에서는 아기 예수 탄생 12일 이후인 1월 6일을 동방 박사들의 도착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방문 시기는 탄생 이후 2년 안에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마태복음 2:16~18은 동방 박사들이 헤롯에게로 돌아오지 않자 2살 이하의 아이들을 살해했다고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 2:14은 요셉이 헤롯의 칼을 피해 밤에 피신하면서 데리고 간 아기라는 단어를 브레포스(βρέφος, 영아)가 아닌 파이디온(παιδίον, 유아)를 사용하고 있다. 이때 아기는 갓 태어난 아이는 아니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걸어서 반나절 정도 걸리는 거리이기 때문에 가서 경배를 하고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3일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아무리 헤롯이 기다렸다고 한들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텐데 2살 이하의 아이들을 살해했다고 하는 것은 동방 박사들이 오랜 시간이 걸려 이곳에 도착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아마 다시 오랜 시간이 걸려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일부 기독교 전통에 의하면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한 이 박사들은 후예 기독교로 개종하고 순교했다고 한다. 13세기 마르코 폴로는 테헤란 남쪽 사베에서 동방박사의 세 무덤을 보았다고 주장했으며 순교한 그들의 뼈는 현재 쾰른 대성당에 보관되고 있는 “동방 박사 유물함(Shrine of the Three Kings)”에 담겨져 있다고 믿고 있다. 또한 중세시대부터 아토스 산의 성 바오로 수도원에는 동방박사의 선물이 들어 있다고 알려진 황금 상자가 있었는데 2014년 크리스마스에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동방박사와 관련된 이러한 유적과 유물은 전통은 있으나 정확한 근거나 고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진 1. 프리실라 카타콤의 프레스코에 묘사된 동방박사, 사진출처: https://www.thecultureconcept.com/epiphany-gold-frankincense-myrrh-three-wise-men-or-kings

 

사진 2. 라벤나의 상트 아폴리나르 누오보교회의 모자이크에 묘사된 동방박사, 사진출처: https://www.thecultureconcept.com/epiphany-gold-frankincense-myrrh-three-wise-men-or-kings